때는 4년 전 2월. 고되고 고된 석사 생활을 마치는 졸업식이 끝났지만, 취업 전까지 연구실에서 일하라는 교수님의 제안을 받았다. 석사 때만큼 일을 시키지는 않을 테니, 연구실 후배들을 잘 도와주면서 취업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학부 연구생 때부터 약 5년간 지켜본 우리 연구실은 군대에 끌려가기 전까지 일을 시켰으면 시켰지 절대 취업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결국 생활비에 문제가 있어서 제안을 수락했다.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그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익숙한 환경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진 못했던 것 같다. 이력서 작성, 포트폴리오 정리, 코딩 테스트 준비 등에 사용해야 하는 시간을 웹툰, 유튜브를 보는데 많이 사용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 핑곗거리는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 너무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연구실을 빨리 떠나고는 싶었기에 잡코리아, 인디드 같은 취업 정보 제공 사이트는 계속 탐방하면서 원하는 회사의 채용 공고가 뜨기를 기다렸다.
당시 원하는 회사의 채용 공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연구요원
, 수평적인 문화
, 자유로운 분위기
최소한 이 세 개를 만족해야 했는데, 전문연구요원
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순간 많은 것들이 필터링되었기 때문이다. 채용 공고와 PR 자료 등에 수평적인 문화
, 자유로운 분위기
등을 강조하고 있는 기업이 대략 10개 정도 있었는데, 내가 실제로 자유로울 것 같다고 판단한 기업은 단 하나 버즈빌이었다. 판단 기준은 이력서에 포맷이 정해져 있는가? 로 단순했는데, 직무와 별 상관없거나 의미 없는 질문 항목, 거기에 더해 정해진 글자 수 등을 제안하는 곳이 정말 수평적이고,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버즈빌은 지원 대상 1순위가 되었다.
지원 대상이 정해지니 무기력함에서 조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어려워서 다시 무기력 해질 뻔했지만 결국 해냈다.
당시에 작성했던 자료들인데, 이력서는 정말 이력 사항에 대해서만 다루었고, 포트폴리오는 이력서에 표현하지 못한 프로젝트 소개 및 역할 정도만 다루었다. 지금 보면 많이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공수를 꽤 많이 들였던 산출물이기 때문에 완성이 되자마자 버즈빌을 포함하여 총 세 곳의 회사에 지원을 했다. 원래는 코딩 테스트 준비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문제를 풀까 말까 한 열정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지원한 것이었다.
서류 통과 메일
지금이나 그때나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는 넘쳤는데, 나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 이력서가 칭찬을 받으니 서류 합격 소식보다 칭찬에 더 설래였다. 다른 두 곳도 서류는 다 통과되었는데, 칭찬은 버즈빌밖에 없었기에 더 좋은 인상이 남았다. 메일에 작성된 면접 일자 제안도 인상적이었다. 메일이 전달된 시점으로부터 내일과 내일 모래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제안된 일자에 진행은 못 했지만, 계속 빠르게 면접을 진행하려고 해주니 지원자 처지에서는 굉장히 고마웠다. 어쨌든 이른 시일 내에 면접이 이루어졌는데, 준비 기간 동안 연구실 관련 일을 하느냐 코딩 테스트를 준비를 못 해서 꽤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
면접은 코딩 테스트와 실무 면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실무 면접 이전에 코딩 테스트가 이루어졌는데, 불안했던 것과 다르게 문제가 술술 잘 풀려서 ‘역시 내가 잘하는 게 맞구나’ 하고 근자감이 더 커지기도 했고 긴장감도 해소되었다. 그렇게 실무 면접이 진행됐다. CTO, 안드로이드 개발팀 리드, 안드로이드 개발자 이렇게 세 분과 3:1로 진행이 되었다. 우선 코딩 테스트 문제를 가볍게 점검했는데, 점검하는 와중에 갑자기 라이브 코딩과 손 코딩을 시켜서 고요하던 내 마음에 긴장감이 몰아칠 뻔했지만 빠르게 잘 대응했던 것 같다. 이후 CS 관련 질문과 직무 관련 질문 시간이 이어졌는데, CS 관련 질문은 자신 있게 다 대답했고, 직무 관련 질문은 다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연구실에서 안드로이드 관련 연구를 진행하긴 했지만 주로 Android Open Source Project(AOSP) 관련 분석이었기에 앱 개발과 관련된 내용은 실제로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무 관련 얘기를 진행할 수 없다보니,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한 소개로 면접을 마무리 했다.
직무 관련 질문을 잘 대답하진 못했지만, 면접 분위기는 좋았기에 면접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서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그놈의 근자감 덕에 만약 떨어진다면 기업이 내 가치를 못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고 일어났는데, 2차 면접을 진행하자는 메일이 와있었다.
기술 면접 통과 메일